[급만남커피밋업#4] 진정한 랜덤 밋업; 뜻밖의 지적 대화

in #kr-series6 years ago (edited)

2019년 1월 17일 서울대입구역 with @sleeprince, @sanghyeok


​01 그림이 전혀 그려지지 않던 만남

​불특정 다수의 충동적인 급만남 글을 쓴 (이상한)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가장 걱정되면서 조금도 예상이 안 되는 만남은 이 세 번째 밋업이었다. 뜻밖에도 그날 처음 스팀잇에 가입한 sanghyeok님이 용기 있게 가장 처음으로 나의 제안을 수락해주셨다.


image.png

'스팀잇'이라고는 일도 모르는 내가 상혁님께 드릴 정보가 거의 없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그래도 먼저 조건을 달지 않았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만나기로 한다. 그런데 상혁님 낚이셨어요. 그런 건 제게 묻는 게 아니랍니다.

image.png

이거 어쩌지 수습이 될까 은근히 걱정하는 와중에 또 한 번 뜻밖의 인물이 나타났으니 그건 바로 sleeprince님! 서울대입구역 근처가 마침 집이라며 이 이상한 만남에 참여하기로 해주셨다. 다행이다. 일단 스팀잇 관련해서라면 sleeprince님에게 묻어갈 수 있겠다. 구세주의 등장으로 기뻐하면서 갑자기 마음속으로 든 의문.

​​'sleeprince님이 대체 왜?...'

​내게 있어서 sleeprince님은 보고 있으면 입이 딱 벌어지는 과학적 지식을 논리적이고 철학적으로 접근한 퀄리티 높은 글을 생산하는 전문가다. 수준 높은 글에 감동해 팔로우를 몰래 하고 내겐 1도 없는 지식을 야금야금 읽어갔었다. 그리고 아는 거 없는 내가 해드릴 수 있는 말이 없어 댓글도 달 수 없는 그런 글을 쓰시던 나와는 아주 멀리 있던 분이랄까. (상극의 캐릭터 ㅋㅋ) 그러고 보면 그분이 나를 팔로우하고 있는 것도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을 하긴 했다. 게다가 글을 쓴 지 2달이 지났는데 갑자기 나타나서 밋업에 오시겠다고 하니 신기하면서도 이해가 잘 되지는 않았다.

​과연 이 만남은 어떤 모습일까? 긴장되면서도 두근거렸다. 그런데 왠지 두 번의 밋업을 경험해보고 나니 항상 내 기대보다 훨씬 흥미로울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생기기도 했다. 퇴근하고 바로 서울대입구역으로 달려갔다.


02 당황스러운 첫 만남

​카페를 걸어가고 있는데 상혁님이 미리 보내주신 카톡 메시지를 그제야 발견했다.

-리버벨 사장님이 바뀌었데요 ㅋㅋ 지금은 브로커피라는 간판으로 영업 중이네요.

우리가 만나기로 한 카페 상호가 바뀌어있었던 것. 그래서 혹시 모르니 2분을 초대한 단톡방을 만들어 슬립프린스님께 이 사실을 알려드렸다.

​>상혁님이 커피집 상호가 바뀌었다고 알려주셨어요!
-네 그렇네요ㅎㅎ
-ㅋㅋㅋ오셨나요?
​-조금 일찍 왔습니다.

​​슬립프린스님은 바로 대답을 하셨고 상혁님은 아무 말이 없으셨다. 그래서 당연히 슬립프린스님만 도착을 했겠거니 생각을 했다. 슬립프린스님은 바로 알아볼 자신이 있었다. 카톡에 사진이 있으셨는데 카페 창가 자리에 분명 그 얼굴을 가진 분이 계셨기 때문! 저분이다!

​카페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분은 나를 신경 쓰지 않은 채 노트북을 보며 무언가 열심히 작업을 하고 계셨다.

​>-저....저기..

​얼굴을 분명 저분이 분명한데 카페 자리도 1인석이고 쳐다보지 않는 ​맥락을 고려해보면 아무래도 이 분이 아니신가.. 좀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럴 때 그분의 차분하고 단호한 음성이 들린다.

​>-혹시 저한테 볼 일 있으신가요?

​뭔가 내가 방해한 기분. 아... 착각을 했나 보다. 엉뚱한 분한테 아는 척을 하다니 엄청 부끄러워 급히 사과를 드리고 카페에 남은 나머지 분이 있는 곳으로 후다닥 자리를 옮겨 인사를 했다. 그분은 안경을 쓰셨는데 나를 보며 환히 웃어주셨다. 민망함을 달래며 인사를 드렸다. 인상에 엄청나게 선하시고 온 몸으로 편안함 에너지를 뿜고 계신 분이었다. 아 이분이 보기와는 달리 sleeprince님이시구나...

​​> -어. 안녕하세요. 다른 분은 아직 안 오셨나 봐요. 집이 근처시라고?
​-아니요. 전 집이 이 근처가 아닌데...
​-아 그래요?(당황)...
​-전 스팀잇은 가입한 지 얼마 안돼서요.
-네????

​무언가 이상하다. 슬립프린스님 글 쓰신 지 오래된 걸로 알고 있었는데.. 단톡방에 메시지를 보낸다.

​-기다리고 있습니다.
​-방금 절 헷갈리고 가셨군요.

​라는 답이 온다. 아까 그 창가의 그분이 유유히 나의 옆자리로 자리를 옮기셨다. 그분이 맞으셨다. 그분이 sleeprince님이셨고 내 앞에 마주 앉은 분이 상혁님이었다. 이제 앞뒤가 맞는다. 그렇게 첫 만남은 나름 강렬했다. 당황스러움과 민망함과 함께 상황이 너무 웃겨 웃음을 멈출 수 없었는데 더 재밌는 건 sleeprince님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하나도 웃지 않으셨다. 그게 더 웃겨서 웃음이 계속 나왔다. 나에게만 재밌고 강렬한 첫 만남이었다.


03 스팀잇

​​일단 아무래도 스팀잇 이야기를 먼저 시작했다. 이제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어쩌다 내가 이 모임의 주최자가 된 거야. sleeprince님이 먼저 말해보라며 내게 먼저 말할 차례를 주셨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 일단 상혁님께 어떻게 스팀잇을 알게 되셨냐고 물었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

​>-아 제가 아시는 분이 스팀 증인이라서요. OOO님이라고 계신데(단연컨대 엄청 유명하신 분)
​-네?? 도대체 왜 저희를 만나셨나요? 그분한테 물어보시는 게...​
​-연락한 지가 오래되어서요.

​그리고 난 이실직고를 한다. '전 암호화폐도 하나도 모르고요.. 아는 게 없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도권은 sleeprince님께 넘어갔다. 안 계셨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sleeprince님이 스팀잇의 여러 가지를 전문적인 용어를 정확하게 구사하시며 설명하셨다. 그리고 kr 커뮤니티에 있었던 일이나 시스템에 관해서도 설명해주셨다. 무언가 kr커뮤니티의 역사 혹은 내가 몰랐던 이야기를 듣는 기분? 상혁님보다는 내가 배우러 온 것 같았다.​ 상혁님은 알 수 없을 법한 이야기에도 엄청난 경청을 하셨다.

​​거기서 알 게 된 사실이 있는데 그중 스팀잇에 '현질'을 한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하하하하. 큰 기대 없이 취미 생활에 돈 들였다는 마음이라고 스팀잇이 없어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자 sleeprince님은 디지털은 믿을 게 못된다면 언제나 백업해야 하는 법이라고 하셨다.

​​아 그리고 내가 상혁님께 글을 쓰실 때 kr, kr-newbie, jjangjjangman태그를 쓰시라고 육성으로 내뱉자 sleeprince님이 엄청 부끄러워하셨다.

​​조금 더 솔직하자면 그날 내가 더 충격을 받았다. 스팀잇은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자기 검열을 할 수밖에 없고 어쩌면 위선적으로 사람을 대할 수밖에 없다는 구조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조금 더 유저에게 기대하는 도덕적 수준이 타 커뮤니티보다 높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시각으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조금 놀랐다. 그 이후로 계속 나를 돌아보게 된다.


04 뜻밖의 신상털이 그리고 지적 대화

​​대학교 때 내가 강호동이라고 별명 지어준 아는 오빠가 있었다. 그 오빠는 자기 얘기를 하지 않으면서 남의 속 깊은 얘기까지 꺼내고 대화를 이어가는 능력이 탁월했다. 상혁님이 그러하셨다. 상혁님은 sleeprince님께 여러 가지 질문은 자연스럽게 하셨다. 그리고 의외로 sleeprince님 전혀 거부감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해주셨다. 지금 하는 일과 앞으로 하려고 하는 일, 어쩌다 지금 하는 일을 하게 되었고 그전에 무슨 일을 하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솔직하게 말씀해주셨다. 들으면서 굉장히 솔직하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상혁님 대단하시다고 감탄했다.

​​아 그리고 부끄럽게도 상혁님이 그 짧은 시간에 내가 쓴 글을 읽으시고 내게도 관심을 보여주셨다. 사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있으시구나란 생각이 들며 고마웠다. 그래서 그 대화를 보면 전혀 상혁님이 뉴비 같지 않고 가장 연륜이 있는 분처럼 느껴졌다.

​스팀잇 이야기가 어느 정도 일단락된 이후에는 정말 의외의 지적 대화가 이어졌다. 물론 나는 주로 듣는 입장이었다. 그날의 대화는 비문학 장르의 작가님 강연을 듣는 기분이었다. 알쓸신잡. 어떻게 저 많은 걸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기억하시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좀 무서운 수준이었다) 한 가지 주제가 나오면 끊임없이 매끄럽게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를 해주셨다. 다 기억을 할 수 없고 못 알아듣는 부분도 있었지만 최대한 집중해서 들었다. 생소하고 흥미로웠다. 무엇보다도 참 재미있었다.

​밋업을 하면서 느낀 건데 글은 생각보다 더 많이 그 사람에 대해 말해준다. sleeprince님은 평소 쓰시는 글과 같은 분이셨다. 논리적이고 명확하고 진리를 탐구하고 그 과정을 즐기는 연구가 타입. 관심 있거나 알고 싶은 게 있으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끝까지 답을 찾으실 것 같다. 지적 탐구에 관해 열정이 대단하시다.

정말 sleeprince님이 꼭 관심분야를 집대성한 책을 내시고 나중에 독자와의 만남 같은 곳에서 강연을 해주시면 좋겠다!

​아 그런데 의외로 좀 귀여운 구석이 있으시다. '20살 초반까지는 총명하셨는데 그 이후로 총명함을 잃었다' 같은 농담을 하시는 등 글보단 훨씬 유쾌하고 재밌으셨다. 내가 보기엔 충분히 천재이고 대단하신 것 같은데 가벼운 넓게 알 뿐이라며 겸손하게 자신을 낮췄다. 자기는 특정분야에 뛰어난 천재가 아니라며 그래서 길을 처음에 못 찾고 방황했다고. 그리고 그런 글을 쓰시고도 아무도 읽지 않는 효용 없는 글을 쓰는 것 같아 고민을 하셨다. 역시 사람은 자기가 가진 걸 잘 모르는 법이다. 내가 이미 충분히 깊게 아시고 글이 너무 재밌는데 아는 게 없어 그동안 댓글을 못 달았고 더 많이 써달라고 하니 고맙다며 웃으시는데 아이 같으셨다.(여러분 sleeprince님 글을 보면 함께 달려가서 아부합시다!!ㅋㅋㅋ)


​상혁님은 그날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해 아쉽다. 처음 상혁님이 그러했다. 불특정 다수의 밋업을 제안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고. 그 궁금증이 풀리셨는지 모르겠다. 내가 내향적이라고 했더니 놀라셨다. 그런데 상혁님도 이런 이상한 모임에 나오셨는데 내향적이시잖아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에너지가 있으셨다. 뭔가 무슨 말이든 해도 다 받아주실 것 같은 말투와 표정. 덕분에 분위기가 더 유해졌던 것 같다. 상혁님이 또 내가 좋아할 것 같은 책을 선물로 주셨다. 이렇게 계속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또 넙죽 받는다. 시간이 많은 제가 완독 하겠습니다! 너무 감사드립니다.

image.png
제가 좋아할만한 책을 주신 것 같다! 반창고 덮인 일러스트가 귀엽다. 감사합니다.

​​그날도 말했지만 평소라면 전혀 만날 일이 없는 어떤 접점도 없던 우리 셋. 어쩌다 만난 랜덤 밋업 그리고 생각보다 괜찮았던 케미스트리(나만의 생각일지도ㅋㅋ) 대화의 균형이 잘 맞았다. 그날 대화는 내 인생 처음 있던 일이었고 아마도 다신 없을 것 같다. 내가 그다지 지적인 사람이 아닌지라.. 사실 체력적으로 너무 피곤해서 9시 정도에 양해를 구하고 먼저 가봐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이야기가 너무 재밌어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오후 10시 대화를 끊었다. 가정이 있는 상혁님이 아기를 바라보는 시선에 이제 그만 보내드려야겠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았으면 밤을 샜을 것 같다.

날 전혀 모르면서도 마음을 열고 이 밋업에 응해주시고 아낌없이 자신의 생각과 이야기를 해주고 지적인 밤을 만들어주신 지식인 sanghyeok님과 sleeprince 두 분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그날 기대 이상으로 너무 재밌었고 유용했어요!! 앞으로 스팀잇에서 계속 봐요. 두 분 다 글 써주세요. 하실 이야기 많으신 거 다 알아요.


image.png
비엔나 커피 먹었는데 커피잔이 텅텅 비었네요ㅋㅋㅋㅋ 이런 사진 밖에 없어요



급만남커피밋업 시리즈
#1 실은 제가 그런 게 아니랍니다.
#2 히든 밋업; 인생 첫 스팀잇 밋업
#3 비일상적 두 번째 밋업; 작가와의 만남
#4 진정한 랜덤 밋업; 뜻밖의 지적 대화
#5 마지막밋업; 우리 오늘 처음 본 거 맞죠?

Sort:  

Hi @fgomul!

Your post was upvoted by @steem-ua, new Steem dApp, using UserAuthority for algorithmic post curation!
Your UA account score is currently 2.619 which ranks you at #14970 across all Steem accounts.
Your rank has improved 20 places in the last three days (old rank 14990).

In our last Algorithmic Curation Round, consisting of 240 contributions, your post is ranked at #83.

Evaluation of your UA score:
  • Only a few people are following you, try to convince more people with good work.
  • The readers like your work!
  • Good user engagement!

Feel free to join our @steem-ua Discord server

3번쨰 밋업도 좋은 만남 좋은 시간 보내셨군요. 헌데 사진속 양손 공손하게 계신분은 어느분이신가요..?ㅎㅎ

네 놀랍게도 그러했답니다.
저 참한 손의 주인분은 상혁님이세요 ㅋㅋㅋ 본의아니게 인증해버렸네요.

어릴땐 총명하셨던 슬립프린스님 어떤분이신지 궁금해 집니다ㅎ
배울것이 많은분 같아요

Posted using Partiko iOS

지금도 총명 그 자체세요 ㅋㅋㅋ가진 자는 잘 모르더라고요 ㅋㅋ 이번 밋업하면서 계속 반성(?)하게 되더라고요 ㅋㅋㅋㅋ

밋업 후기 잘 읽었습니다. 즐겁고 생산적인 밋업이셨다니 부럽네요!

Posted using Partiko Android

엇! glory7님의 댓글을 놓치다니_
네 말그대로 밋업하길 잘했다! 너무 즐겁고 행복했던 밋업이였어요. 히히 감사드립니다!

밋업 후기 오랜만에 보는것 같네요 ㅎㅎ

오우 그런가요? ㅎㅎ :D 일주일에 네 번 밋업한 후기입니다 ㅋㅋ

오...간만에 밋업후기 좋네염~+_+

오오 뉴비존님이시당! 좋아해주시니 기쁩니당 +_+!!!
[우려먹나 하는 걱정이 조금 있었거든요 ㅋㅋㅋ]

밋업은 늘 유익하졉+_+ ㅎㅎㅎ

뜻밖의 밋업 이군요. 글을 재미있게 잘 쓰십니다. ㅋ

네네 정말 갑자기 분위기 밋업이었어요 제겐 ㅋ
재미나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D!!!

우리의 만남도 기대가 됩니다 흐흐흐흐흐

흐흐흐흐흐 에피소드 넘쳐날 것 같은 예감 저도 기대됩니다 +_+!!

알쓸신잡. 그 자리에 저도 껴서 얘기 듣고 싶어요!

평소 듣지 못했던 이야기!!즐거운 시간이었어요.
그 자리 불이님까지 있었으면 어땠을까 기분 좋은 상상이네요 ㅎㅎㅎ

알쓸신잡 멤버님들 저도 슬그머니 팔로우 합니다 ^^

ㅎㅎㅎ 후회하시지 않으실거에요 ^_^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