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6.25전쟁 납북자기념관

in #kr-sharehows6 years ago

점점 잊혀져가는 가족, 납북자 기념관 탐방기

안녕하세요? 둘이싸우지마 입니다.
본 글들은 통일부 기자단을 활동하며 적어보았던 글을 재업로드 형식으로 올리고자 합니다.
어떻게 보면 스팀잇의 주제 중 생소한 분야일 수 있으나 여러분들이 이러한 부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뿌듯할 것 같네요^^

이번 시간에는 이산가족의 한 구성원인 납북자 가족 문제를 납북자 기념관의 탐방 이야기와 함께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기념관.jpg

그렇다면 납북자가 어떤 의미인지부터 알아야겠죠?
6.25전쟁 이전에 남한에 거주하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6.25전쟁 중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북한에 강제로 끌려가 북한 지역에 억류되거나 거주하게 된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이들을 납북자가 아닌 귀순자로 표현하며 납치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더 자세히 이야기 해보도록하죠

북한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선전포고도 없이 38도선을 넘어 기습남침을 감행하게 됩니다.
이에 북한은 3일 만에 서울을 장악하고, 한 달여 만에 낙동강 전선을 제외한 모든 도시들이 북한에게 빼앗겨 버리게 되지요. 이러한 배경 속에서 북한은 구체적인 납북계획을 세웠습니다.
남한에서 유명한 정치인, 유명배우, 언론인, 공무원 등 엘리트 계층뿐만 아니라 18~45세의 무고한 민간인 까지 강압적으로 북으로 이송했습니다.

왜 납치를 했을까?

다양한 이유가 있으겠으나 전쟁에서 이기려면 싸워야 하는 남성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유명배우가 없어진다면 남한군의 사기는 떨어지고 나아가 전쟁의 결과까지도 좌우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습니다. 그래서 강제북송을 통해, 힘을 약화시키려고 했던 것이죠.
약 10만여 명의 유명인 및 무고한 사람들이 끌려갔다고 합니다.

몇 명이 납북 되었나요?

공식적으로는 1952년 <6.25사변피랍치자명부> 최초의 전국단위 납북자 명부로 82,959명 명단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전쟁 중에 작성되어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가장 많은 납북자 명부라 합니다.
이후, 남한 정부에서는 1956년까지 '납치자증명원'을 발급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샌가 발급이 중단 되었고, 대신 대한적십자사에서 이 명단의 자료로 '납치자등록확인서'를 발급 했다고 합니다.

북한 당국의 태도는?

북한은 현재까지 '북한에 납북자는 없고 자진 월북한 사람들만 있다'고 주장하며 생사확인 역시,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요?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이산가족 상봉, 비전향장기수 송환 등 남북 간 인도적 문제가 이슈화 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에 전시 납북자 가족 역시, 진상조사를 요청했었고, 최종적으로 2015년까지 총 5505건의 납북 피해 신고가 접수 되었으며, 4777건이 전시 납북자로 결정 되었다고 합니다.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 전경>

2. 기념관.jpg

여기가 어딜까요?

여기는 통일부에서 설립한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 입니다.
본 기념관은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납북자 및 그 가족들의 명예회복과 더불어 국민들과 함께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되새기고 평화 통일 의지를 다지기 위한 공간입니다.
납북자 및 그 가족들의 마음을 담아 특별전시관 및 상설전시관을 만들었으며, 납북자 가족들이 기증한 자료, 사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나아가 과거를 되짚어 보며 납북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모으고자 설립 되었습니다.

계단으로 올라가보면 상들리에를 볼 수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가족사진으로 보이는 동영상이 있었는데요.
물어보니, 납북된 분들과 찍은 마지막 사진을 전시 해놓은 것이라 합니다.

<남북자와 피해 가족사진 상들리에>

2.5 상드리에.jpg

<모래아트>

3. 모레아트.jpg

이게 무엇인가요?

납북되어 끌려가고 있는 모습을 모레아트로 만든 동영상 일부분입니다.
종착지가 어딘지도 모르고 끌려가는 무고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실제 6.25전쟁납북진상규명위원회에서 조사한 기록물을 보관한 조사서입니다.
한눈에 봐도 양이 방대하죠?

5. 조사서 서가.jpg

6. 소식조사회답서.jpg

1957년 11월 제19차 국제적십자회의 기간에 이러한 사람이 북한 지역에 살고 있다고 답변이 온 문서입니다.
북한은 납북자가 아닌 본인의 의사에 따라 북한에 거주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엔딩(흔적)

9. 흔적(엔딩).jpg

기증사진

7. 기증사진.jpg

8. 기증사진.jpg

이 사진들과 내용들은 납북자 가족이 기증한 것입니다.
저도 당시 세대가 아니지만 암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통일문제를 함께 공감하고 나누다보면 어느새 통일에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요?
2018년 4월 27일은 남북정상이 만난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한반도에 평화가 깃들길 바라봅니다.

긴글 읽어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