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비테 교육법"을 읽고 나서

in #education4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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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비테 교육법”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처음 접할때 아마 누구라도 “어떻게 해서 자신의 아들을 13세에 철학박사를 받게 만들었을까?”를 가장 궁금해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러한 부분이 궁금했다. 미숙아이기도 했던 자신의 아들을 칼 비테는 어떻게 천재로 키워냈을까?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 방법에 대해서 그다지 지면을 할애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방법론”에 대해 궁금한 나머지 “그래서 어떻게 아이를 가르치고, 어떤 교습법을 시도했는가?”라는 관심이 책을 읽는 초반에는 많았으나, 점점 그러한 관심을 사그러져 가고, 문득 “칼 비테”라는 인물에 대해서 더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선 칼 비테는 독일에서 목사였던 사람이다. 그리고 이 때 당시에만 하더라도 “어린아이에게 조기교육은 무척이나 해롭다”는 사회적인 통념이 지배적인 분위기였는데, 칼 비테는 “제대로 잘 시킬 수만 있다면 어린 나이의 조기교육이 결코 나쁘지 않다”는 자신의 신념이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어떤 이의 신념과 믿음이 “사회적 통념”을 맞서서, 그것을 깨고 실행을 한다는 것은 “본인 자체가 정서적으로 대단히 건강하고 강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리고 이 칼 비테는 “결혼을 어떻게 하는 것이 자녀 교육에 굉장한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부부가 어떻게 사느냐를 자녀에게 보이고, 또한 자녀에게 신앙을 심어주는 것, 어떤 시각에서 보면 “교습법”과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 요소들일지 모르나 다른 시각에서는 “교습법과 방법론”보다 훨씬 더 중요한 영역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헌데 사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아버지인 칼 비테에게서 발견했던 대목은 “자녀가 여러 상처들을 받지 않도록 든든한 버팀목이자 방패막이 역활을 잘 수행했다”는 점이다. 자녀에게서 어떤 “비범함”이 어린 나이에서부터 알려지게 되고, 아버지 칼 비테와 아들 칼 비테 주니어는 여기저기에 불려가게 되거나, 파티에 초대를 받게 되거나, 여러 제안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이러한때 아버지 칼 비테가 “자신의 아들에게 흥미를 보이고 애정을 보이는 것 같지만 흠집을 내려는, 상처를 주려는, 그리고 망신을 주려는 사람들을 조기에 분별하고 자신의 아들에게 접근을 하지 못하도록 잘 방어했다”는 점이다. 솔직히 이 대목이 정말 와 닿았고, 어찌보면 이 대목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목을 읽으면서 “인간은 나에게 없는 부분을 다른 이가 가지고 있거나, 어떠한 천재성이 발휘가 되기 시작할때, 어떻게든 흠집을 내려는 사람들과 시기질투를 하는 사람들이 그때나 지금이나 항상 존재하는구나”라는 생각이었다. 문득 어릴때는 “천재 소리를 듣거나 영재 소리를 들어서, 매스컴이나 언론에도 출연을 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지나서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에도 못 미치는 삶으로 전락을 해 버린 케이스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랐다. 왜 그들은 그렇게 되었을까?
그리고 위에서 “상처”라는 단어를 언급했었는데,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특히 아버지 칼 비테가 아들을 “받을 수 있는 상처들”로 부터, 사람을 일찍 빨리 분별해서 쳐낼 사람들을 쳐내는 대목에서, “공교육 현장에서 수없이 들어온, 한 개인에게 심기워져 있는 잠재력과 가능성을 죽이는 온갖 말들에 노출되어 온 시간들”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어쩌면 “특별한 교습법”이나 “뛰어난 방법론”보다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독성있는 상처들”로 부터 내 자녀를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이것이 정말로 잘 되어 진다면, 그리고 건강하고 밝은 부부사이를 유지하면서, 자녀에게 신앙 교육을 잘 시킨다면, 하나님께서 각 개인에게 부여하신 “잠재력과 가능성”은 각각의 때에 맞게 꽃피워나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스스로 알아서 자신이 길을 찾아 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었다.
이 책에서 여러 인상적인 대목들이 있지만, 여러 장황한 미사여구를 늘어놓으면서 칭찬하지만 결국 어떤 사탕발림에 불과한 말들을 사람들, 다른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칭찬을 하면서 접근하는 듯 하지만 아닌 이들을 걸러 내는 과정에서 칼 비테의 사람 보는 안목을 엿볼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바로 162 페이지에 기술되어 있는 대목이다 (이 책에 적혀 있는 대로 인용을 해 보고자 한다) “덧붙여 말하자면 진정한 칭찬을 길게 하지 않는 법이다. 오히려 따스한 눈길로, 부드러운 악수로, 진심 어린 몇 마디 말로,이따금 뺨을 쓰다듬는 행위로, 입맞춤으로, 무엇보다 사랑과 자비로 칭찬받을 만한 사람의 마음에 드는 행위로 표현한다”

이 책을 덮으면서 “어떤 특수한 교습법 내지는 교육법”이 아닌 “잠재력과 가능성을 죽이는 말들을 내뱉을수 있는 사람들로부터 자녀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로 생각이 전환되었다. 그리고 성경에 예수님께서는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는 비유”를 가지고 사람의 마음 밭을 설명하신다. 어떤 씨는 돌밭에, 가시밭에, 길바닥에 뿌려지나, 어떤 씨는 옥토에 뿌려져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결실을 맺는다고 말이다. 이 비유는 사실 “밭에 대한 이야기이지 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씨가 좋냐, 나쁘냐 혹은 우량 종자냐”에 관심을 기울일지 모르나, 아무리 좋은 씨앗도 사막에 뿌려지면 죽을 수 밖에 없고, 좀 덜 좋은 씨앗도 옥토에 뿌려지면 결실을 맺지 않겠는가?
돌밭과 가시밭 그리고 길바닥은 사람의 마음에 여러 형태의 상처로 인해서 형성되는 마음밭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환경에서는 “씨가 뿌려져도 곧 죽는다”는 것이다. 성경의 이러한 대목이 떠오르면서, 칼 비테가 과연 “자신의 자녀를 양육할때 어디에 많은 역점을 두었을까?”를 생각하게 되었고, 이러한 이유로 이 책에서 “교습법에 대한 지면 할애”가 적은 것이었을까?라는 생각이다.